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 처남 서울대 이영훈 교수,반일종족주의논란,김부겸 고향,아내 이유미

이영훈 교수는 1951년 9월 10일 생으로 올해 우리나라 나이 60세이며, 대구광역시 출신입니다.

학력으로는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부터 박사 학위까지 수료했습니다.

현재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이며, 이승만학당의 학장이라고 합니다.

한신대학교 경제학과,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7년 2월부로 정년퇴임한 상황입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한국경제사인데요.

 조선후기 사회경제사 및 농업경제사에 관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하였고, 이후 연구의 범위를 넓혀서 근현대 한국경제사 및 한국 근현대사에 전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대에서 정년 퇴임한 뒤 사재를 털어 이승만학당을 세워 강연 및 집필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승만TV라는 유튜브 채널도 만들어 활동 중입니다.

이승만학당에서는 이영훈 외에도 주익종, 김낙년 등과 같은 한국경제사 연구자들이 강연을 진행하고 있으며, 김용삼 기자와 같은 언론인 출신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TV라는 유튜브를 개설해서 반일 비판, 위안부 강제연행 부정, 대한민국 영토의 독도부정, 일본 식민지배의 정당성, 이승만의 생애와 활동, 조선왕조 비판,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견해를 강의 형식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운동권 출신으로 전태일이 분신한 70년대 초부터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을 했고 1977년~1982년, 지곡서당(芝谷書堂)에서 5년 동안 한학(漢學)과 한문(漢文)을 공부하였습니다.



그가 쓴 여러 책 중 2019년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펴내 일본을 악으로 간주하는 세계관을 반일 종족주의로 간주하여 진영논리에서 논란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일본어 위키백과에서 일본 제국을 찬양하는데 자주 인용되는 학자로 알려졌습니다.


다음은 이영훈 교수의 매제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대표 후보의 아내 이유미 씨가 작성한 글 원문입니다.




김부겸 전 의원의 아내인 이유미입니다.


큰오빠인 이영훈 교수로 인해 김부겸 의원에 대해 안 좋은 말이 떠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하소연을 드릴까 합니다.


큰오빠가 대학 때 학생운동으로 제적이 되고 도망 다니던 시절, 형사들이 우리 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오빠는 학생운동으로 투옥되어 재판을 받고 3년여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남동생은 대학 졸업 후 美 문화원 폭파 사건으로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2년여 옥살이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민주화 운동을 하던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남편도 79년 가을에 친구였던 셋째 오빠의 소개로 만나, 82년 초에 결혼하였습니다.


저 역시 80년, 86년, 92년, 세 차례에 걸쳐 경찰과 안기부에 끌려갔습니다. 80년에는 연애할 당시입니다. 광주항쟁이 나자 서울대 복학생이던 남편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전국에 지명수배했습니다. 한은 대구지점에 다니던 저를, 애인이라며 경찰청 대공분실에서 나와 잡아갔습니다.


군복으로 갈아입히고 수건으로 눈을 가렸습니다. 두 명이 밤새 취조 했습니다. 한 명은 달래고, 한 명은 때렸습니다. 그중 한 명은 훗날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당시 고문에 가담했던 경찰관입니다. 남편의 소재를 캐물었지만, 실제로 어디 있는지 저도 몰랐습니다.


그러자 서울로 압송해갔습니다. 저를 큰오빠의 신혼집 근처 여관에 가둬두고 도청 장치를 붙였습니다. 큰오빠 집으로 연락하겠다고 했던 남편에게서 연락이 올 것이라 예상하고 덫을 놓은 것입니다. 남편은 잡힐 뻔했지만, 큰오빠의 기지로 간발의 차로 도주했습니다. 다시 대구로 데려가 절 풀어주고는 한 달 동안 감시를 붙여 미행했습니다.


결혼을 한 후 86년 남편이 복학해 서울대 앞에서 백두서점을 운영할 때였습니다. 관악경찰서에서 나와 수시로 책을 압수해갔고, 둘째를 가져 만삭인 저는 두 차례 연행되었습니다. 좌경용공서적을 소지, 판매했다는 죄였습니다. 당시 근처에서 광장서적을 하던 남편의 선배인 이해찬 대표님도 함께 연행되었는데, 대표님이 거세게 항의해주신 덕분에 며칠 만에 풀려나곤 했습니다.


마지막은 92년입니다. 남편은 김대중 총재의 민주당 대변인실 부대변인이었습니다. 김대중 총재는 대선 출마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선실'이라는 할머니 간첩을 내세워 남편과 저희 가족을 간첩단으로 몰았습니다.


남산 안기부로 저와 저의 어머니, 남편을 잡아갔습니다. 이선실이 간첩임을 알고 있지 않았냐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몰랐다고 버티자, 사흘 만에 어머니와 저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때는 민주화 이후라 매질은 하지 않았지만, 제가 앉은 의자를 발로 차는 등 폭력적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가끔씩 찾아오던 그 할머니를 만났던 제 친정어머니를 가혹하게 몰아붙였습니다. 남편은 재판 끝에 대부분은 무죄를 받고, 불고지죄만 유죄를 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이렇게 험난한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오직 남편이   하는 정치가 올바르다 믿고 뒷바라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저의 친정 오빠로 인해 곤혹스런 처지를 당하니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옛날의 고통스런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고 있자니 눈물이 흐릅니다. 부디 정치인 김부겸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고, 여러분이 널리 이해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년 8월 3일

이유미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04/20200804008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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